설악산 2막 1부|한계령~희운각대피소 10시간 사투, 공룡능선 재도전과 어둠 속 도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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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자연의 거친 현장을 온몸으로 기록하는 아웃도어러, 네오G입니다.
첫 번째 설악산 공룡능선 도전은 무려 18시간이 걸렸습니다.
완주에는 성공했지만 무릎 통증과 체력 고갈에 시달렸고, 동행한 선배가 준비해 온 에너지바 20개를 거의 모두 먹어 치울 만큼 처절한 산행이었습니다.
공룡능선을 제대로 즐겼다기보다, 이를 악물고 살아서 빠져나왔다는 표현이 더 가까웠습니다.
그때의 아쉬움이 오래 남았습니다.
그래서 두 번째 도전에서는 무작정 밀어붙이지 않기로 했습니다. 첫날 한계령에서 출발해 대청봉을 지나 희운각대피소에서 1박하고, 충분히 회복한 다음 날 공룡능선에 진입하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방풍과 보온 장비, 아이젠, 헤드랜턴, 무릎 보호대와 스틱, 여분 의류와 식량까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철저하게 준비했습니다.
하지만 산에서는 준비를 많이 했다고 해서 일정까지 계획대로 흘러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첫날 저녁, 우리는 희운각으로 내려가는 얼어붙은 돌길에서 발이 묶였습니다.
그리고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제 스마트폰 화면에 같은 이름이 반복해서 떠올랐습니다.
[희운각 대피소]
1. 오전 8시30분 한계령 출발, 두 번째 공룡능선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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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계령에서 출발해 중청과 대청봉을 지나 희운각대피소까지 이동한 첫날 경로입니다. 트랭글 기록상 이동 거리는 10.5km였습니다. |
오전 8시쯤, 한계령 들머리에 발을 내디뎠습니다.
하단부에는 아직 가을 기운이 남아 있었습니다. 숲은 비교적 포근했고, 출발할 때만 해도 산행은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서북능선을 따라 고도를 올릴수록 설악산의 분위기가 빠르게 달라졌습니다.
낮은 곳에서 느꼈던 부드러운 가을 공기는 사라지고, 고지대 특유의 차갑고 강한 바람이 얼굴을 때리기 시작했습니다.
늦가을 설악산에서 어려운 점은 단순히 기온이 낮다는 것만이 아닙니다.
오르막에서 두꺼운 옷을 한꺼번에 입고 땀을 많이 흘리면, 능선에 도착해 찬바람을 맞는 순간 젖은 옷 때문에 체온 관리가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한 벌로 버티기보다 여러 겹을 필요에 따라 열고 닫는 방식으로 상체를 구성했습니다.
땀을 피부에서 떼어내는 베이스레이어, 플리스, 보온재 재킷, 바람과 눈을 막는 하드쉘을 차례로 입었습니다.
오르막에서는 지퍼를 열어 열을 배출하고, 바람이 강해지는 구간에서는 보온층과 하드쉘을 보강했습니다.
그 덕분에 대청봉 부근의 강한 바람 속에서도 땀을 과하게 식히지 않고 체온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2016년 11월, 눈과 강풍 속에서 처음 대청봉 정상에 선 동행자. 당시 고지대는 이미 한겨울에 가까운 풍경이었습니다.동행자는 이날 대청봉이 처음이었습니다.정상석 앞에서 기념사진을 남기며 감격해하는 모습을 보니 저도 기분이 좋았습니다. 하지만 여유를 오래 부릴 수는 없었습니다.
오늘 밤 우리가 머물 희운각대피소까지는 아직 험한 하산 구간이 남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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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청대피소 앞에 설치됐던 설악산 대청봉 우체통. 등산객들은 이곳에서 기념엽서와 편지를 보낼 수 있었습니다. |
눈보라 속 중청대피소의 빨간 우체통
중청대피소 앞을 지나며 눈에 들어온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눈발 속에서도 유난히 선명했던 빨간 우체통이었습니다.
당시 이 우체통에는 대청봉에 오른 등산객들이 자신이나 가족, 친구에게 엽서를 써 넣곤 했습니다. 중청대피소에 비치된 설악산 기념엽서에 글을 적고 우체통에 넣으면, 대피소 직원이 수거해 산 아래 우체국을 거쳐 발송했습니다. 대청봉 등반기념 소인이 남는 것도 특별했습니다.
스마트폰 메시지가 지금처럼 모든 것을 대신하기 전에는, 설악산 정상부에서 쓴 몇 줄의 편지가 산행의 기억을 오래 붙잡아 주었습니다. 눈보라 속 빨간 우체통은 그 시절 중청대피소의 작은 낭만이었습니다.
2. 대청봉 이후 시작된 시간 지연
대청봉을 지나 희운각 방향으로 내려서면서 계획에 조금씩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한계령에서 서북능선을 거쳐 대청봉까지 이동하는 동안 예상보다 시간이 많이 소요됐고, 동행자의 페이스도 서서히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결정적인 문제는 희운각으로 내려가는 돌길이었습니다.
단순히 눈이 쌓인 길이 아니었습니다.
더 까다로운 것은 얼음이 길 전체에 이어진 것이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한동안 얼어붙은 구간이 계속되
다가 다시 맨돌길이 나타났고, 또 얼마 지나지 않아 얼음이 반복됐습니다.
얼음 위에서는 아이젠이 필요했지만, 맨돌길에서 그대로 걸으면 발톱이 돌에 부딪히며 충격이 그대로
무릎까지 올라왔습니다. 결국 아이젠을 벗었다가 다시 차는 일을 여러 번 반복해야 했고, 그 과정에서
시간과 체력이 예상보다 훨씬 많이 소모됐습니다.
한 걸음씩 발을 놓을 위치를 확인하며 내려가다 보니 시간은 계속 흘렀습니다.
산속의 해는 기다려주지 않았습니다.
조금 전까지 보이던 주변 산세가 빠르게 어둠 속으로 가라앉았고, 결국 우리는 희운각대피소의 불빛도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하산로에 갇혔습니다.
바로 그때 스마트폰이 울렸습니다.
화면에는 희운각대피소라는 글자가 떠 있었습니다.
“예약자 네오G님 맞으십니까? 지금 시간이 많이 늦었는데 어디쯤이세요? 무슨 일 있으신 건 아니죠?”
현재 위치와 일행의 상태를 설명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전화가 왔습니다.
10분, 20분 간격으로 전화가 이어졌습니다. 예약자가 정해진 시간까지 도착하지 않으니, 대피소 직원분들도 야간 산행 중 사고가 난 것은 아닌지 걱정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전화가 반복될수록 마음이 급해졌습니다.
그렇다고 빙판길에서 동행자를 무리하게 재촉할 수도 없었습니다. 야간에는 서두르는 순간 작은 미끄러짐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동행자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먼저 가서 대피소 접수하고 상황을 설명할게. 절대 뛰지 말고, 헤드랜턴으로 발밑만 보면서 천천히 따라와.”
그 말을 남기고 저는 먼저 희운각 방향으로 움직였습니다.
3. 어둠 속 희운각대피소 도착, 소등까지 남은 시간은 단 한 시간
어둠 속에서 희운각대피소에 도착한 시간은 저녁 8시 무렵이었습니다.
트랭글 기록에는 총 소요시간 10시간 1분 17초, 순수 운동시간 6시간 37분이 찍혀 있었습니다.
운동시간과 총 소요시간 사이의 차이가 컸던 이유는 휴식뿐 아니라 빙판길에서 이동 속도가 크게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아침 8시쯤 한계령을 출발했으니 꼬박 10시간을 산속에서 보낸 셈입니다.
그런데 안도할 시간도 없었습니다.
그당시 대피소 소등 시간은 밤 8시.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한 시간뿐이었습니다.
그 안에 예약 확인을 마치고, 젖은 장비를 정리하고, 저녁을 먹고, 침상에 들어갈 준비까지 끝내야 했습니다.
차가운 바깥에서 긴장한 채 내려오다가 밝은 취사장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몸에 남아 있던 힘이 한꺼번에 빠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때 취사장 한쪽에서 산행객답지 않은 차림의 중년 남녀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등산복이 아닌 평범한 가을 옷차림이었고, 등산화 대신 일반 신발을 신고 있었습니다. 큰 배낭이나 헤드랜턴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사연을 들어보니 비선대에서 천불동계곡 방향으로 가볍게 걸어 올라오다가 예상보다 깊이 들어왔고, 해가 진 뒤에는 되돌아갈 수도 없어 희운각까지 올라온 상황이었습니다.
대피소 예약도 없었고, 야간 장비와 음식도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데이트 삼아 시작한 산책이 11월 설악산 고지대의 야간 산행으로 바뀌어버린 것입니다.
두 사람은 추위와 허기에 지쳐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니 그냥 지나치기가 어려웠습니다.
4. 차가운 취사장에 퍼진 소불고기 냄새
저는 배낭 깊숙이 넣어 온 저녁 식사를 꺼냈습니다.
이번 산행을 준비하면서 대피소에서 제대로 먹으려고 챙겨 온 양념 소불고기였습니다.
코펠에 불을 붙이고 고기를 올리자, 양념이 끓는 소리와 함께 달콤하고 진한 냄새가 차가운 취사장 안으로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하루 종일 행동식과 간단한 음식만 먹던 산행객들 사이에서 고기 굽는 냄새는 꽤 강렬했습니다.
우리도 배가 고팠지만, 옆에서 떨고 있던 두 사람에게 먼저 일부를 나누어 드렸습니다.
따뜻한 고기를 받아든 두 사람의 표정이 눈에 띄게 풀렸습니다.
산속에서 먹는 따뜻한 음식은 평지의 한 끼와 느낌이 다릅니다. 추위와 긴장 속에서는 몇 점의 고기와 따뜻한 국물만으로도 몸과 마음이 동시에 진정됩니다.
두 사람은 여러 번 고맙다고 인사했습니다.
거창한 구조 활동은 아니었지만, 준비 없이 산속 깊이 들어왔다가 곤란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에게 따뜻한 음식 한 끼를 나누었다는 사실은 오래 기억에 남았습니다.
우리도 남은 소불고기와 밥으로 늦은 저녁을 마쳤습니다.
소등 시간은 계속 가까워지고 있었습니다.
서둘러 설거지를 마치고 장비를 정리한 뒤, 밤 8시가 되기 직전에 대피소 침상에 몸을 눕혔습니다.
아침 8시쯤 한계령 출발.
대청봉 정상.
빙판 돌길.
반복해서 울린 희운각의 전화.
그리고 소등8시의 대피소 도착까지.
첫날부터 계획보다 훨씬 많은 체력을 사용했지만, 이제 잠만 푹 자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희운각에서 충분히 회복한 뒤 다음 날 새벽 공룡능선에 진입하는 것.
그것이 이번 재도전의 핵심 계획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때 알지 못했습니다.
진짜 지옥은 설악산의 암릉이 아니라, 불이 꺼진 뒤의 좁은 대피소 안에서 시작될 것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설악산 한계령~희운각 구간에서 얻은 실전 교훈
이번 구간에서 가장 크게 느낀 것은 지도에 표시된 거리만으로 산행시간을 계산해서는 안 된다는 점입니다.
노면이 얼어 있거나 초행자가 동행하면 예상시간은 크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1. 늦가을 설악산은 들머리와 고지대의 계절이 다릅니다
한계령 아래쪽에 가을 기운이 남아 있어도 대청봉과 희운각 부근은 겨울에 가까울 수 있습니다. 출발 지점의 기온이 아니라 최고 고도와 능선의 바람을 기준으로 장비를 준비해야 합니다.
2. 아이젠이 있어도 빙판 돌길에서는 속도를 줄여야 합니다
아이젠을 착용했다고 해서 모든 얼음길에서 안전한 것은 아닙니다. 돌 위에 얇게 얼음이 붙은 구간에서는 발톱이 제대로 박히지 않을 수 있으므로 보폭을 줄이고 발 디딜 곳을 확인해야 합니다.
3. 헤드랜턴은 배낭 안쪽에 넣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예상보다 해가 빨리 질 수 있으므로 쉽게 꺼낼 수 있는 위치에 보관해야 합니다. 예비 배터리도 함께 준비하는 편이 좋습니다.
4. 대피소 도착 예정시간이 늦어지면 연락해야 합니다
통신이 가능한 구간에서는 대피소에 현재 위치와 상태를 알리는 것이 좋습니다. 직원의 반복 전화는 단순한 독촉이 아니라 예약자의 안전을 확인하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5. 초행자와 함께할 때는 자신의 속도가 아니라 일행의 속도로 계산해야 합니다
체력이 좋은 사람이라도 빙판길과 야간 산행에 익숙하지 않으면 이동 속도가 크게 떨어질 수 있습니다. 산행 계획은 가장 느린 일행을 기준으로 세워야 합니다.
부록|11월 설악산에서 사용한 상체 4단 레이어링
이번 산행에서 착용한 상체 장비는 다음과 같습니다.
특정 제품이 모든 사람에게 정답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당시 기온과 바람, 제 운동 강도에 맞춰 구성한 실제 사례입니다.
1레이어: 브린제 슈퍼 써모 메쉬
피부와 중간층 사이에 공기층을 만들고, 땀이 피부에 오래 머무는 것을 줄이기 위해 착용했습니다.
2레이어: 아크테릭스 플리스 하프집업
기본적인 보온을 담당하면서, 오르막에서는 지퍼를 열어 열을 배출하는 용도로 사용했습니다.
3레이어: 아크테릭스 아톰 LT 후디
휴식하거나 바람이 강해졌을 때 보온층으로 활용했습니다. 움직임이 많을 때는 상황에 따라 벗거나 지퍼를 조절했습니다.
4레이어: 아크테릭스 알파 SV
대청봉과 능선에서 눈과 강풍을 직접 막는 최외곽 방풍·방수층으로 사용했습니다.
장비의 브랜드보다 중요한 것은 땀이 차기 전에 환기하고, 멈추기 전에 보온층을 입는 타이밍입니다.
[다음 이야기] 설악산 2막 2부 | 희운각의 아침, 공룡을 포기하고 만난 천불동의 삼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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