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 의상능선 우중산행|문수봉 대신 부왕동암문에서 발길을 돌린 날

 

“10년 넘게 직접 발로 뛰며 기록한 트랭글 데이터를 바탕으로, 현장에서 직접 겪은 실전 산행 기록을 공유합니다.”

비 예보가 있긴 했습니다.

오후에 잠깐 지나갈 비라고 생각했고, 북한산성탐방지원센터에 도착했을 때도 빗방울이 조금 떨어지는 정도였습니다.

보통 이런 날씨라면 산행을 미루는 게 맞습니다.

실제로 입구까지 왔다가 돌아가는 분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새벽부터 준비해서 한 시간 넘게 운전해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돌아가기가 쉽지는 않더군요.

'심해지면 내려오자.'

그렇게 의상능선으로 향했습니다.


📍 오늘 산행 코스

북한산성탐방지원센터 → 대서문 → 중성문 → 국녕사 → 용출봉 → 용혈봉 → 부왕동암문 → 원점회귀

트랭글 기록

  • 전체거리 10.4km

  • 운동거리 9.3km

  • 전체시간 5시간 30분

  • 운동시간 4시간 21분

  • 누적고도 688m

원래 계획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의상능선을 계속 타고 문수봉, 대동문까지 이어갈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산에서는 계획보다 날씨가 먼저입니다.


용출봉부터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국녕사를 지나 용출봉에 올라서자 북한산 능선이 순식간에 구름에 잠기기 시작했습니다.

잠깐씩 시야가 열리면 운무 사이로 의상능선이 나타났다가 금세 사라졌습니다.

맑은 날과는 전혀 다른 북한산이었습니다.

용혈봉

풍경은 정말 멋졌습니다.

그런데 그 멋진 풍경을 오래 볼 여유는 없었습니다.

비가 갑자기 굵어졌습니다.


젖은 바위보다 더 신경 쓰는 건 따로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비 오는 날은 바위만 조심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조금 다릅니다.

오히려 바위 위에 얹힌 흙, 젖은 나무뿌리, 낙엽을 더 신경 씁니다.

등산화를 오래 신다 보면 발이 미끄러지는 순간이 대부분 그런 곳에서 시작됩니다.

그래서 비 오는 날은 속도를 줄이기보다 먼저 보폭부터 줄입니다.

이건 책에서 배운 게 아니라 산을 오래 다니며 자연스럽게 생긴 습관입니다.


멈추니까 비보다 바람이 먼저 느껴졌습니다

올라갈 때는 오히려 시원했습니다.

여름 산행이라 땀도 많이 났으니까요.

그런데 능선에서 잠시 비를 피하려고 멈추니 느낌이 확 달라졌습니다.

젖은 등산복이 몸에 붙고, 바람이 들어오니 오래 서 있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때 알았습니다.

여름 우중산행도 움직일 때와 멈췄을 때가 완전히 다르다는 걸요.


휴대전화가 가장 말썽이었습니다

이번 산행에서 처음 겪은 문제였습니다.

사진을 찍으려고 화면을 누르는데 빗방울이 계속 다른 곳을 터치했습니다.

사진 버튼을 누르면 화면이 넘어가고, 다시 켜면 또 빗물이 떨어지고.

방수보다 더 중요한 건 비 맞으면서 제대로 조작할 수 있느냐였습니다.

트랭글을 켜놓고 기록하는 사람이라면 공감할 부분일 겁니다.


그래서 저는 5~6시간 산행에도 34L 배낭을 멥니다

이 부분은 사람마다 취향이 다를 겁니다.

당일 산행이라면 20~25L 배낭으로도 충분합니다.

그런데 저는 조금 여유 있는 배낭을 선호합니다.

이날도 34L 배낭을 메고 갔습니다.

이유는 짐을 많이 넣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배낭 안에 항상 기본으로 들어 있는 것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 마른 수건

  • 무릎보호대

  • 얇은 바람막이

  • 배낭 방수커버

  • 일회용 우비

이건 산 갈 때마다 챙기는 게 아니라 항상 배낭 안에 들어 있습니다.

그날 추가하는 건 물, 행동식, 김밥 정도뿐입니다.

이번 북한산에서는 그 천 원짜리 일회용 우비가 정말 큰 역할을 했습니다.

평소엔 자리만 차지하는 물건인데, 필요할 땐 가장 먼저 찾게 되더군요.


부왕동암문에서 방향을 바꿨습니다

부왕동암문

부왕동암문에 도착했을 때 체력이 떨어진 건 아니었습니다.

솔직히 조금 더 갈 수는 있었습니다.

그래서 잠깐 고민했습니다.

그런데 비는 약해질 기미가 없었고, 앞으로는 젖은 암릉이 더 남아 있었습니다.

옷은 이미 젖었고 휴대전화도 제대로 쓰기 어려웠습니다.

하나씩 보면 별일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산에서는 작은 문제가 겹치기 시작할 때가 더 위험합니다.

그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갈 수는 있는데, 굳이 오늘 갈 이유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문수봉을 포기하고 부왕동암문에서 내려왔습니다.


완주보다 중요한 건 돌아오는 타이밍입니다

이번 산행은 계획했던 코스를 끝까지 걷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실패한 산행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산은 다음에도 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무리해서 한 번 잘못 판단하면 다음 산행 자체가 어려워질 수도 있습니다.

오랫동안 산을 다닐수록 오르는 기술보다 언제 돌아설지 결정하는 판단이 더 중요해진다는 걸 이번에도 다시 느꼈습니다.

다음에는 맑은 날 다시 올라 이번에 남겨둔 의상능선을 이어갈 생각입니다.


📌 이번 산행에서 느낀 세 가지

  • 비 오는 암릉에서는 바위보다 흙·낙엽을 더 조심한다.

  • 34L 배낭은 큰 짐이 아니라 항상 준비된 비상장비를 위한 선택이다.

  • 산에서는 완주보다 돌아오는 타이밍이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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