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 공룡능선 사투기 4부|공룡 한복판의 치킨과 끝없는 야간 하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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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설악산 공룡능선의 일반적인 코스 소개가 아니라, 실제 무박 종주에서 겪었던 공룡능선 진입과 야간 하산의 기록입니다.
희운각대피소 앞에서 천불동 하산과 공룡능선 강행 사이를 고민하던 원정대는 결국 공룡의 등뼈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무릎은 이미 통증을 보내고 있었고, 시계는 오후 2시를 넘어선 상태였습니다.
그런데도 저희는 들어갔습니다.
1. 지옥과 천당의 경계, 공룡능선에 진입하다
오후 2시, 희운각대피소 앞 갈림길.
무릎은 비명을 지르고 체력은 바닥이었지만, 저희는 결국 공룡능선을 택했습니다.
“여기까지 왔는데 공룡은 넘어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한마디와 함께 저희는 지옥의 입구로 발을 들였습니다.
진입하자마자 펼쳐진 광경은 말 그대로 지옥과 천당의 조화였습니다.
몸은 찢어질 듯 힘들었지만, 고개를 들면 설악산의 거대한 암봉과 능선이 사방으로 펼쳐졌습니다.
봉우리 하나를 넘으면 끝날 것 같았지만, 그 뒤에는 또 다른 봉우리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가고, 또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가는 반복.
세 시간이 지나자 일행 모두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습니다.
2. 10시간 동안 짊어진 비밀 병기
바로 그때였습니다.
저는 말없이 45L 배낭의 지퍼를 열었습니다.
서울에서 출발할 때부터 감춰두었던 치킨 한 마리와 얼린 캔맥주 다섯 개를 꺼냈습니다.
장장 10시간 동안 제 어깨를 짓누르던 묵직한 비밀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순간이었습니다.
공룡능선 한복판에서 치킨 상자를 여는 순간, 넋이 나가 있던 일행들에게서 환호와 박수가 터져 나왔습니다.
꽝꽝 얼려 넣었던 맥주는 긴 산행 동안 적당히 녹아 살얼음이 낀 상태였습니다.
그날 공룡능선에서 마신 맥주 한 모금은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습니다.
뜨거워진 몸과 바닥난 체력 속으로 차가운 맥주가 들어가자, 잠시나마 고통이 멈춘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제가 무거운 배낭을 끝까지 짊어진 이유도 바로 그 순간이었습니다.
지친 사람들의 얼굴에 다시 웃음이 돌아오는 모습을 보니, 그동안의 무게가 한꺼번에 보상받는 기분이었습니다.
다만 지금 돌아보면 장거리 산행에서 술은 탈수와 판단력 저하에 영향을 줄 수 있으므로 권할 만한 행동은 아니었습니다. 당시의 특별한 추억으로만 남겨두는 것이 맞습니다.
3. 짧았던 천당, 다시 시작된 공룡의 등뼈
치킨과 맥주로 잠시 기운을 되찾았지만, 산행이 끝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해는 이미 서쪽으로 기울고 있었고 마등령까지는 아직 멀었습니다.
저희는 다시 배낭을 메고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초반부터 체력이 무너졌던 선배는 이미 눈의 초점이 흐려진 채, 앞사람의 등만 바라보며 걸었습니다.
저 역시 무릎 통증을 참으며 한 걸음씩 나아갔습니다.
공룡능선의 봉우리들은 끝날 듯 끝나지 않았습니다.
눈앞의 봉우리를 넘으면 또 다른 봉우리가 솟아 있었고, 해가 지기 전에 능선을 빠져나가겠다는 기대도 점점 희미해졌습니다.
4. 마등령, 끝나지 않는 어둠과의 사투
어느새 날이 완전히 저물었습니다.
저희는 다시 헤드랜턴을 켰습니다.
마등령을 지나면 이제 내리막만 남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길은 쉽게 끝나지 않았습니다.
어둠 속에서 오르막과 내리막이 계속 반복됐고, 피로가 쌓일수록 발밑의 돌 하나도 장애물처럼 느껴졌습니다.
멀리 속초 시내의 불빛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저 불빛까지만 가면 끝날 것 같았습니다.
저희는 그 불빛을 구원의 표시처럼 바라보며 밤 8시, 9시가 넘도록 내려갔습니다.
그런데 이상했습니다.
아무리 걷고 또 걸어도 불빛은 가까워지지 않았습니다.
“저 불빛, 계속 제자리에 있는 것 같지 않습니까?”
누군가가 무심코 던진 말에 일행 모두가 잠시 걸음을 멈췄습니다.
주변은 완전한 어둠이었고, 저희 머리 위의 헤드랜턴 불빛만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멀리 보이는 속초의 불빛은 마치 저희를 비웃기라도 하듯, 영원히 닿을 수 없는 거리에서 그대로 멈춰 있었습니다.
그 순간부터 그 불빛은 하산의 희망이 아니라, 끝나지 않는 산행을 상징하는 미스터리처럼 느껴졌습니다.
에필로그: 끝이 보이지 않는 밤
공룡의 등뼈를 넘었고, 마등령까지 지나왔습니다.
그런데도 산행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몸은 이미 한계를 넘어섰고, 무릎은 제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저희는 헤드랜턴 불빛 하나에 의지한 채 비선대를 향해 계속 내려갔습니다.
멀리 보이는 속초의 야경은 여전히 같은 자리에 떠 있었습니다.
도대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었던 18시간의 무박 산행.
그리고 완전히 바닥난 순간에 찾아온 비선대의 기적은 다음 완결편에서 이어집니다.
다음 편👉 [[설악산 공룡능선 사투기 5부] 비선대의 기적과18시간 무박산행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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